[역사 이야기] 천년의 도시 경주 - 황룡사지박물관,동궁과 월지

여행으로 역사 공부하는 경주의 세 번째 이야기

이순영 승인 2020.08.19 16:12 | 최종 수정 2020.08.20 20:08 의견 0

경주는 신라가 세워지던 B.C 57년부터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나라를 바친 935년까지
거의 1,000년간 신라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경주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유적지입니다.

우리 일행은 1박2일 코스로 경주를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워낙 유적지가 많다보니 계획한 것 중 일부는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몇 년전에 다녀왔을 때보다 복원이 더 많이 되어 있어서
여행이 끝날 때는 다시 또 와야겠구나 마음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주역 근처의 표지판들은 유적지 안내가 대부분인 것도 재미있었는데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네요. 

 

경주역 근처에는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 유물 발굴 현장을 볼 수있는 쪽샘지구,
첨성대, 황룡사지, 분황사,동궁과 월지(안압지)들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고
그 곳에서 발굴된 진품들이 있는 경주국립박물관이 있습니다.
가까이 붙어 있기는 한데, 다 보려면 엄청 걸어야 합니다. 
평소 잘 걷지 않는 분이라면 다리가 많이 아플수도 있답니다. 


황룡사 복원 조감도

황룡사는 진흥왕 때 월성 동쪽에 궁궐을 짓는 도중 황룡이 나타나서 절로 지었다고 합니다.
약 2만평에 달하는 신라 최대의 사찰이었는데,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자장율사의 건의로
9층 목탑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황룡사지 9층 목탑은 높이가 80m나 되는 당시 동양 최대의 탑이었습니다.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유한 백제의 아비지가 만들었습니다.
9층은 주변의 9개 나라(일본,당,오월,탐라,백제,말갈,거란,여진,고구려)를 의미하는데,
이들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겠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탑과 사찰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때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목탑의 초석만 남았답니다.
10층으로 세워서 몽골까지 막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더라면 더 좋았을까요? 😢

높이가 80m나 되다보니 당시 경주 시내 어디에서나 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날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탑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고요.

​황룡사 역사 문화관은 6:00까지 운영하는데,
우리 일행은 너무 늦은 시간에 들러 영상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황룡사 역사 문화관을 나와 동궁과 월지로 이동하였습니다.

월지의 야경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으로 왕자가 지내면서 귀족들이 연회나 잔치를 벌였던 곳입니다.
경순왕이 후백제 견훤으로부터 침입을 받자 왕건에게 알려 도움을 받고
그 후 왕건을 위한 잔치를 벌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는 화려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경주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월지는 그리 넓은 연못은 아니지만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느 곳에서도 연못 전체를 볼수 없도록
설계하였다고 합니다. 낮에 와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음 날 일정이 맞지 않을 것 같아
밤에 들렀지만 밤에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경치는 볼 줄 모르고 다리가 아프다며 빨리 숙소로 가자고 재촉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다리가 아프긴 많이 아프더라구요.

​숙소로 돌아가 짐을 풀고, 
아이들은 게임을 어른들은 치맥과 수다를 즐기며
내일의 여행을 기대하며 아픈 다리를 쉬게 해 주었습니다. ^^

저작권자 ⓒ 뉴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