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Women’s day 국제 여성의 날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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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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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오후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고 급하게 회의에 참석한 날입니다. 그날 회의는 부장급 회의였는데 휴무였던 상사 대신 참석해 구석진 곳에 앉아 공유사항이나 받아 적고 있을 때 였습니다. 베이지색 정장을 위아래로 멋들어지게 입은 지배인이 꽃송이를 다발로 품에 안은 채 회의실 문을 열었습니다. “ Happy International Women’s day Soo! ” 그러면서 꽃 한송이를 손에 쥐어주는데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으니 이번에는 왜 아직도 퇴근을 안했냐며 주위를 휘휘 둘러보는 겁니다. 건너편에 앉은 객실부 팀장도 급한일이 없으면 이만 퇴근 하는 게 어떻냐고 묻습니다. 그날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International Women’s day’를 검색 해 보았습니다.
Happy International Women's day - iStock
▶International Women’s day 국제 여성의 날
1908년 3월 8일 뉴욕의 러트거스 광장에 2만여 명의 여성 의류노동자가 모여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의류 공장에서 하루 12~18시간 일해야만 했던 10대 여성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단축, 임금 임상, 노조 설립의 자유, 투표권을 요구하며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빵은 육체의 권리인 생존권, 장미는 정신의 권리인 참정권을 의미했고 빵과 장미는 이후 여성의 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했지만 이 시위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서 여성 해방을 위한 운동이 번져나갔고 오랜 시간이 지나 여성들의 요구가 수용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UN 은 이 날을 기념해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정했습니다.
지배인은 왜 꽃을 준걸까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조기퇴근을 하며 즐거웠던 마음도 잠시, 축하받고 배려 받았지만 '여성의 날' 의 의미를 검색 해 본 후 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 날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 부장 급 아홉명 중 대리 참석했던 저를 제외하고 단 두 명만이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Sticky floor 끈끈이 마루
·Glass ceiling(유리천장) 이라는 용어는 이미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들이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조직내의 관행과 문화처럼 굳어진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을 비판한 경제 용어입니다.
·Sticky floor(끈끈이 마루) 는 여성 인재의 발이 바닥에 달라붙어 아예 점프할 수 없다는 것을 빗댄 용어입니다. 여성을 하위직에 머물러 있게하는 차별적인 고용 형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스스로 위로 올라가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도 sticky floor 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천장보다 무서운 끈끈한 바닥효과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막 발을 내딛은 첫 해, 여성스럽고 부드럽게 일을 처리한다는 피드백을 듣던 시기였습니다. 칭찬일수도 있겠지만 업무상 도전적이지 못하고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사회의 구성원이기 전에 소녀였고 여성이였고 어머니여야 한다고 학습되어버린 역할에 유리천장까지 닿을 수도 없이 바닥에 눌러 붙어있는 것은 아니였을까? 하고 지난날 내 모습들을 돌아 보았습니다.
Business meeting - Pixabay
▶▶▶ Women in leadership: Achieving an equal future in a COVID-19 world
그날 회의실에서 결정권을 내릴 수 있는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은 왜 단 두명 뿐 이였을까요? 당시 사내에 팀장급 직함의 여성분들 또한 단 두명 이였고 임원진 중에는 단 한명의 여성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일 했던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여성인권이 높다고 평가받는 나라입니다.)
올 해 UN에서 지정한 국제 여성의 날 의 주제는 “Women in leadership: Achieving an equal future in a COVID-19 world,” ( 여성 리더십 : 코로나19 세계에서 평등한 권리를 쟁취하기)입니다. 여성 인권은 참정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던 시대로 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빵과 장미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기회와 평등은 어쩌면 많은 여성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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